한국 편의점의 샌드위치 진열 매대

중간이 사라진 매대 — 한국 유통 5년 데이터가 보여주는 소비 양극화

참고자료 · 자료 시점
핵심 출처 — 산업통상자원부, ’25년 연간 및 12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2026.1.28 배포, 주요 26개사 기준), Ingka Group Annual Summary and Sustainability Report FY25, Inter IKEA Group FY25 financial results, Michael Porter, Competitive Strategy(1980) — ‘stuck in the middle’
자료 시점 — 1980년대 포지셔닝 이론 + 2021~2025 국내 유통 통계
정리 — Inkmoat 편집팀 · 2026.7

마이클 포터가 1980년에 쓴 문장이 있다. 원가 우위도 아니고 차별화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에 선 기업은 수익성이 낮다는 것. 영어로는 stuck in the middle, 우리말로는 대개 ‘중간에 끼였다’로 옮긴다.

40년 넘은 명제라 이제는 교과서 문구처럼 들린다. 그런데 한국 유통업의 최근 5년 성적표를 펼치면, 이 문장이 아직도 매우 물리적인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5년치 성장률을 한 줄로 세우면

산업통상자원부가 2026년 1월 28일 배포한 자료는 주요 26개 유통업체의 2021~2025년 연평균 성장률(CAGR)을 이렇게 정리한다.

구분 연평균 성장률(’21~’25)
전체 6.7%
온라인 10.1%
오프라인 2.6%
백화점 5.7%
편의점 5.6%
준대규모점포(SSM) 1.0%
대형마트 -4.2%

같은 5년, 같은 소비자, 같은 경기 사이클이다. 그런데 백화점은 연 5.7%로 늘고 대형마트는 연 -4.2%로 줄었다. 두 업태 사이의 격차가 매년 10%포인트씩 벌어졌다는 뜻이다.

온라인 비중은 그 배경을 함께 보여준다. 2020년 48.2%에서 2021년 52.1%, 2023년 53.8%, 2024년 56.4%를 거쳐 2025년 59.0%까지 올라갔다. 5년 만에 10%포인트 넘게 옮겨 갔다.

2025년 한 해만 봐도 그림은 같다

단기 변동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2025년 연간 실적만 따로 보자.

  • 전체: 6.8% 성장
  • 온라인: 11.8%
  • 오프라인: 0.4%
  • 백화점: 4.3%
  • 편의점: 0.1%
  • 준대규모점포: 0.3%
  • 대형마트: -4.2%

대형마트는 2024년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설(1월)과 추석(10월)이 낀 달을 빼면 매달 부진했다. 편의점의 0.1%는 성장이라기보다 정체에 가까운데, 점포 수 감소가 함께 진행됐기 때문이다. 편의점 4사 점포 수는 2024년 말 54,852개에서 2025년 말 53,266개로 1,586개 줄었다. 점포를 줄이면서 매출을 지켰다는 뜻이므로, 점포당 실적은 오히려 개선된 셈이다.

준대규모점포는 상반기 플러스, 하반기 마이너스로 갈렸고, 주력인 식품 부문 부진으로 점포당 매출이 2024년 12월 이후 13개월 연속 감소했다.

슈퍼마켓 채소 매대에 붙은 99센트 가격표
미국 슈퍼마켓의 채소 매대와 가격표(참고 사진). 가격을 전면에 내세운 매대는 양극화 시장에서 한쪽 끝을 담당한다. 사진: MatthewHoobin / Wikimedia Commons (CC0)

상품군을 보면 양극화가 더 선명하다

같은 자료에서 2025년 12월 오프라인 상품군별 증감률을 보면, 매대 안에서도 갈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드러난다.

  • 해외유명브랜드: +13.7%
  • 패션/잡화: +5.1%
  • 식품: -1.6%
  • 생활/가정: -3.4%

해외유명브랜드가 두 자릿수로 늘어나는 동안 식품과 생활용품은 줄었다. 소비를 줄인 게 아니다. 줄인 곳과 늘린 곳이 갈렸을 뿐이다. 생활필수품에서 아낀 돈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칸으로 옮겨 갔다.

이 패턴에는 심리적 일관성이 있다. 반복 구매하는 품목, 남에게 보이지 않는 품목, 브랜드 간 차이를 체감하기 어려운 품목에서는 가장 싼 것을 고른다. 대신 어쩌다 사는 품목, 남에게 보이는 품목, 차이가 분명한 품목에는 평소보다 더 쓴다. 한 사람이 편의점 도시락과 명품 가방을 같은 달에 사는 게 모순이 아니라, 같은 예산 배분 규칙의 두 결과인 셈이다.

중간이 무너지는 진짜 이유

중간 업태가 어려운 것은 중간 가격이 나빠서가 아니다. 중간이 제공하던 묶음이 풀렸기 때문이다.

대형마트가 팔던 것은 사실 상품이 아니라 조합이었다. 넓은 주차장, 한 번에 끝나는 장보기, 어느 정도 싼 가격, 어느 정도 넓은 구색. 이 조합에는 값이 있었다. 그런데 각 요소가 따로 더 잘하는 곳으로 흩어졌다. 싼 것은 온라인과 초저가 채널이, 즉시성은 편의점과 퀵커머스가, 경험과 고가 브랜드는 백화점이 가져갔다.

포터의 명제를 오늘 말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중간은 위치가 아니라 잔여물이다. 아무 축에서도 1등이 아닐 때 남는 자리가 중간이지, 처음부터 중간을 목표로 삼은 기업은 없다.

값을 내리면서 이익률을 올린 사례

그렇다면 저가 쪽 끝으로 가는 것이 답인가. 이케아의 최근 실적은 그 선택이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케아 최대 프랜차이지인 잉카그룹의 FY25(2024년 9월~2025년 8월) 총매출은 415억 유로로, 전년 418억 유로 대비 0.9% 감소했다. 매장 방문과 구매 수량은 늘었는데 매출이 줄었다. 값을 계속 낮췄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익은 반대로 움직였다. 영업이익 15억 유로로 매출 대비 3.5%를 기록해 전년 3.0%에서 올라갔고, 순이익은 8억 유로에서 14억 유로로 늘었다. 상품·식품 마진 개선과 매장 이행 효율이 이유로 제시됐다.

프랜차이저인 인터이케아그룹도 FY25 매출 263억 유로로 전년 265억 유로 대비 0.9% 감소했다. 이 회사는 원자재·상품 가격과 운송·물류 비용이 미국 관세 발표를 둘러싼 불확실성 이후 변동적 패턴을 보였고, FY25 상반기에는 가격이 계속 내렸지만 하반기에는 관세를 포함한 소싱 비용이 올랐다고 밝혔다.

여기서 읽을 것은 매출 곡선이 아니라 그 아래다. 저가 포지션은 가격을 낮추는 결정이 아니라 원가를 낮추는 능력으로 유지된다. 그 능력 없이 값만 내리면 마진이 아니라 회사가 줄어든다.

실무 적용 — 그래서 뭘 하면 되나

  • 자사 상품군을 ‘반복 구매 / 비반복 구매’로 먼저 갈라라 — 양극화는 소득 계층이 아니라 구매 상황을 따라 일어난다. 같은 고객이 두 칸에서 다르게 행동한다.
  • 중간 가격대 SKU의 기여를 별도로 집계하라 — 전체 매출에 섞여 있으면 잠식이 보이지 않는다. 가격대별로 매출총이익과 회전율을 나눠 보면 어느 칸이 비어 가는지 드러난다.
  • 한쪽 끝을 고를 때는 그 끝의 조건표를 먼저 써라 — 저가는 원가 구조, 프리미엄은 브랜드 자산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다. 조건을 못 갖춘 채 포지션만 옮기면 중간보다 나쁜 자리가 된다.
  • 묶음을 다시 짜라 — 중간이 무너진 원인이 묶음 해체라면, 해법도 새 묶음이다. 편의점이 ‘즉시성 + 소량 + 간편식’으로 다시 묶어 성장한 방식이 참고가 된다.
  • 점포당·고객당 지표로 판단하라 — 편의점 4사가 점포를 1,586개 줄이면서 매출을 지킨 것처럼, 총량 지표는 구조 변화를 가린다.
  • 가격을 내릴 때는 원가 절감분을 먼저 확보하라 — 잉카그룹이 값을 낮추면서 영업이익률을 3.0%에서 3.5%로 올린 것은 절감이 선행됐기 때문이다. 순서가 바뀌면 결과도 바뀐다.

중간이 사라진 매대는 소비가 위축됐다는 신호가 아니다. 소비자가 항목별로 다른 기준을 쓰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 기준표를 상품 단위로 다시 그리는 일이, 지금 유통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이다.

본문의 국내 유통 통계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요 26개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집계한 자료이며, 전체 소매시장 통계와는 범위가 다르다. 잉카그룹·인터이케아그룹 회계연도는 9월 1일부터 이듬해 8월 31일까지다. 이 글은 경영 사례 분석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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