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중앙을 무너뜨려라 — 한니발이 2배의 로마군을 전멸시킨 ‘칸나이 포위전’의 경영학
기원전 216년 여름, 이탈리아 남부 아우피두스 강가. 먼지가 목까지 차오르는 평원에 로마 군단 약 8만 6천 명이 늘어섰다. 맞은편 카르타고군은 5만 남짓. 로마 지휘관 바로는 승리를 확신했다. 계산이 단순했기 때문이다. 두 배 가까운 병력으로 정면을 밀면 진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니발의 전열이 이상했다. 가장 약한 부대—갈리아·이베리아 보병—를 하필 정중앙 맨 앞에 세워 둔 것이다. 게다가 그 중앙을 로마 쪽으로 불룩하게 밀어냈다. 초승달의 볼록한 등이 로마를 향한 모양. 로마 백부장들 눈에는 실수로 보였을 것이다. 저기를 뚫으면 끝이다.
몇 시간 뒤, 로마 군단은 그 ‘실수’ 안에서 칼조차 휘두르지 못하고 죽었다. 2,200년이 지난 2025년, 똑같은 대형이 뷰티 매대와 AI API 가격표 위에서 다시 펼쳐졌다.
가장 약한 부대를 가장 앞에 세운 이유
로마는 직전 두 번의 패배를 만회하려 사상 최대 규모를 동원했다. 논리는 하나였다. “수가 압도적이면 정면으로 밀어 이긴다.” 한니발은 그 자신감을 막지 않았다. 초대했다.

로마 보병이 중앙을 때리자 카르타고 중앙은 예정대로 밀렸다. 다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뒤로 휘었을 뿐이다. 볼록했던 초승달이 점점 오목해졌고, 로마군은 승기를 잡았다고 믿으며 스스로 자루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양 날개가 닫혔다. 정예 아프리카 보병이 좌우 측면을 때렸고, 로마 기병을 몰아낸 카르타고 기병이 방향을 돌려 후방을 봉쇄했다. 사방이 막히자 로마군의 최대 강점이던 밀집도가 그대로 사인(死因)이 됐다. 뒷줄은 나아갈 수 없고 앞줄은 물러설 수 없었다. 폴리비오스 기록 기준 로마 전사자는 최대 7만 명 안팎, 카르타고는 약 5,700명이었다.

오해를 하나 걷어내자. 칸나이의 핵심은 ‘중앙을 버렸다’가 아니라 밀리되 무너지지 않을 만큼 통제했다이다. 통제 없는 약한 중앙은 전술이 아니라 그냥 패배다. 경영으로 옮기면, 미끼로 내주는 영역이 진짜 붕괴로 번지지 않게 현금흐름과 최후 방어선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025년의 칸나이 ① — 다이소는 올리브영의 중앙을 치지 않았다
국내 뷰티 시장의 로마 군단은 올리브영이다. 2025년 매출 5조 8천억원대, 영업이익률 12%대.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 넷 중 한 명 이상이 외국인이다. 이 중앙을 정면으로 치겠다고 나선 후발주자는 지난 10년간 전부 갈렸다.
다이소는 그 중앙을 아예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1,000~5,000원이라는, 올리브영이 수익 구조상 내려갈 수 없는 가격대에 진을 쳤다. 결과는 숫자로 나온다. 다이소 화장품 매출 신장률은 2022년 50%, 2023년 85%, 2024년 144%로 가속했다. 입점 브랜드는 2022년 말 7개·120여 종에서 2025년 말 150여 개·1,400여 종으로 늘었다. 10~20대의 기초·색조 구매 채널이 통째로 옮겨 갔다.
측면 공격의 정석이 여기 있다. 다이소가 노린 건 올리브영의 매출이 아니라 올리브영이 반격하면 자기 마진이 먼저 무너지는 구간이었다. 1만~3만원대 큐레이션으로 12%대 이익률을 지키는 회사가 3,000원짜리 세럼으로 맞불을 놓는 순간, 자기 중앙이 휜다. 실제 올리브영의 대응은 가격 인하가 아니라 글로벌·외국인 인바운드라는 다른 전선으로의 확장이었다. 강자가 정면 반격 대신 우회를 택했다면, 그 전선은 이미 포위된 것이다.
2025년의 칸나이 ② — 딥시크가 하루 만에 5,890억 달러를 지운 방법

2025년 1월 20일,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추론 모델 R1을 공개했다. 일주일 뒤인 1월 27일, 엔비디아 주가는 17% 빠지며 하루 만에 약 5,89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날렸다. 미국 증시 사상 단일 기업 최대 하루 손실이었다.
딥시크는 “우리가 세계 최고 모델”이라고 정면으로 붙지 않았다. 붙었으면 졌다. 대신 가격과 개방성이라는 측면을 열었다. R1의 API 요금은 100만 토큰당 입력 0.55달러·출력 2.19달러. 같은 급으로 비교되던 OpenAI o1은 입력 15달러·출력 60달러였다. 성능은 벤치마크상 비슷한데 가격은 한 자릿수 퍼센트. 여기에 가중치를 공개해 누구나 자체 서버에 올릴 수 있게 했다.
포위가 닫히는 장면은 그 다음이다. 2025년 6월 10일, OpenAI는 o3 API 가격을 80% 인하했다(100만 토큰당 10→2달러, 40→8달러). 강자가 자기 손으로 자기 단가를 8할 깎았다. 로마 보병이 자루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간 것과 같은 동작이다. 상대의 강점—압도적 규모, 프리미엄 가격 결정력, 무거운 고정비—은 언제나 기동성 부족의 다른 이름이다.
포위가 완성돼도 로마는 함락되지 않는다
칸나이의 진짜 교훈은 사실 뒷부분에 있다. 한니발은 역사상 손꼽히는 완승을 거두고도 로마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전투에서 이기는 능력과 그 승리를 최종 목표로 환전하는 능력은 완전히 다른 근육이었다. 보급, 동맹, 시간이라는 ‘전장 밖 변수’에서 로마가 더 질겼다.
2025년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테무는 초저가로 아마존을 측면 포위해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점유율 24%까지 올라섰고(셰인은 9%), 아마존은 20달러 이하 상품만 파는 ‘아마존 홀(Haul)’을 급히 내놓아야 했다. 여기까지는 완벽한 칸나이다. 그런데 2025년 5월 2일, 미국이 중국·홍콩발 소액 면세(de minimis) 제도를 폐지했다. 800달러 이하 무관세라는 보급선이 끊기자 테무와 셰인은 미국 시장 점유율을 되돌려 놓기 시작했다.
측면 포위 전략이 대개 여기서 죽는다. 포위의 동력이 ‘규제 차익’이나 ‘한시적 보조금’처럼 남이 언제든 끊을 수 있는 보급선일 때, 전술적 완승은 유통기한이 있다. 다이소의 균일가는 자체 소싱 구조에서 나오고, 딥시크의 저가는 자체 아키텍처에서 나온다. 테무의 저가는 상당 부분 관세 제도에서 나왔다. 이 차이가 3년 뒤 순위를 가른다.
실무 적용 — 약자가 강자를 포위하는 4단계
- 1단계. 강자가 내려올 수 없는 좌표를 먼저 찾는다. 경쟁사 IR·상품 구성에서 영업이익률과 평균 단가를 역산하라. 그가 따라오면 자기 손익이 깨지는 가격대·고객층이 당신의 전장이다. 다이소의 5,000원, 딥시크의 0.55달러가 그 좌표였다.
- 2단계. 중앙은 미끼로만 쓰고, 손실 한도를 숫자로 못박는다. 저마진 미끼 상품(무료 티어, 로스리더 SKU)은 ‘월 손실 상한 ○○만원, ○개월’까지 이사회 문서에 적어라. 상한 없는 미끼는 전술이 아니라 출혈이다. 한니발의 중앙은 밀렸을 뿐 무너지지 않았다.
- 3단계. 날개(수익원)를 미끼와 분리해 둔다. 미끼가 타격받아도 현금이 도는 별도 라인—구독·B2B·자체 브랜드—을 먼저 세워라. 카르타고 기병이 살아 있었기에 포위가 닫혔다. 미끼와 수익원이 같은 제품이면 그건 그냥 할인이다.
- 4단계. 보급선이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3분 안에 답하라. 지금의 원가 우위가 규제·환율·플랫폼 정책처럼 외부에서 왔다면, 그 조건이 사라지는 날을 시나리오로 잡고 대체안을 준비하라. 테무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2025년 5월을 맞았다.
포위는 화려하지만, 포위 자체가 목적이 되면 한니발이 된다. 이겼는데 이기지 못한 장군.
그러니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당신이 지금 내주고 있는 중앙은 설계된 미끼인가, 아니면 그냥 밀리고 있는 전선인가. 손실 상한과 회수 시점을 종이에 적을 수 있다면 전자다. 적을 수 없다면, 자루 속에 들어가 있는 쪽은 당신이다.
본 글은 역사 사례를 통한 전략 해설이며, 특정 기업 간 경쟁 행위를 조장하지 않습니다. 고대 전투의 수치는 사료 특성상 추정값입니다. 기업 수치는 각 사 발표·언론 보도 기준이며 집계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작성 · Inkmoat 편집팀 — 최신 경영학 논문과 비즈니스 케이스를 1차 출처 기준으로 큐레이션합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해설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